도공수행체험

안경전 종도사님 도훈

정공(靜功)과 동공(動功) 수행

2015.05.25 | 조회 2008

정공(靜功)과 동공(動功) 수행

 

1) 동·서 수행 문화의 큰 틀, 정공과 동공

 

상제님 도의 수행법에서 왜 정공과 동공 수행을 하는가? 기존 수행법에서 “가만히 앉아서 호흡조절이나 의식을 조절해서 깊은 고요 속에서 평안을 얻고 광명 체험하는 것. 이것이 전형적인 수행의 원론이다. 그것만이 수행의 정법이다.” 이렇게 가르쳐온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수행법을 살펴보면, 동공과 정공의 두 가지 행법을 써왔다. 유가에서도 육례(六藝), 곧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의 6가지를 수행한다.
‘예’라고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놀림이다. 몸을 어떻게 갖느냐?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 자연과 조화되게, 가정 사회 세상 사람들과 조화되게 내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예’다. 그걸 쉬운 말로 “질서다, 조화다, 하나됨이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것이 다 도공인 거다.
불가에서도 “왜 앉아서 참선만 하느냐?”고 한다. 실제 진정한 수행은 자면서, 꿈속에서도, 걸어 다니면서도, 설거지하면서도 그 도심을 떠나지 않는 거란 말이다. 정공과 동공이 그냥 하나가 돼버린 거다.
선가의 수행법도 똑같이 동공(動功)과 정공(靜功)을 바탕으로 한다. 저런 무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은 몸놀림만 가지고서, 활이나 칼춤 추면서 무예만 단련하는 거냐? 다 정공과 동공을 병행하는 것이다.
|133.3.11 종의회 종도사님 말씀


2) 정공과 동공은 음과 양의 일체 관계

 

수행의 정신도 음양의 일체, 음양의 본성을 이해해서 나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불·선·기독교 이전의 신교 문화 시대부터 수행법은 동공과 정공의 음양으로 구성돼 있다.
정공은 가만히 앉아서 잡념을 거두고 그 고요의 극치에까지 밀고 들어가서 거기서 진정한 생명의 살아있는 모습, 곧 음 속의 양을 체험하는 것이다. 태을주를 읽을 때 몸을 자꾸 움직이면 되는가? 마음을 자꾸 일으키면 되는 건가? 잡념을 가지고 되는가 말이다.
마음과 몸이 고요히 쉬면서, 주문에만 집중해서 읽으면 그 지극한 고요함 속에서 하늘땅 만물이 살아있는 진정한 모습을 본다. 이게 정공의 문제다.
반면에 동공은 거꾸로 동 속에서 정을 체험하는 거다. 동중정(動中靜)이다. 예를 들어서 도가에서 하는 기공이 있다. 옛날 율곡이라든지 유가 철학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체조와 같은 생활 동공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품을 하는 것도 사실은 도공이다. 그게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도공인 것이다.
동공의 경우는 가만히 이렇게 앉거나 누워서 하는 정공과는 달리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거다. 물과 불, 음과 양, 겉과 속이 합쳐져 있듯이, 내가 지금 몸을 움직이면 내 마음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고요히 가라앉는 거야. 동중정(動中靜)이다.
증산도 수행법은 정공을 통해서 살아 있는 생명의 진정한 모습, 곧 동(動)의 경계를 보는 거다. 또한 동공을 통해서, 내 몸의 여러 가지 몸짓을 통해서 만물 생명의 고요한 내면의 모습을 보는 거다. 정속에서 동을 보고 동속에서 정을 본다. 정중동(靜中動)이고 동중정(動中靜)인 것이다.
|133.3.11 종의회 종도사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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